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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와이브로 종료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

by 회색연필 2019. 1. 1.

와이브로 에그(와이브로 에그, 사진 @Wikicommons)



2006년.

KT는 새로운 통신망을 오픈하면서 무의미하게 개방하고 싶지 않았다.

또다른 가두리 양식장을 기대하면서, 전용 PDA폰과 그 위에 올릴 포털서비스를 구축했다.

배경화면, 벨소리, 게임, 만화 등을 가져다 넣었다.


런칭쇼는 화려했고, 마치 Wibro가 온세상을 바꿀것처럼 떠들썩했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못해 Wibro PDA폰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포털 서비스도 찬밥이 된다.


네트워크 가입자라도 건지려고 "동글이"를 노트북과 함께 판매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시원치 않았다.

"에그"가 출시되고 나서야 도전은 멈추었다.


KT는 당시 망구축에만 1조 431억원을 썼다.

컨텐츠 플랫폼을 만드는데 수천억원을 썼고,

로드쇼를 통해 세계시장에 어필하는데만 수십억원을 썼다.

오픈 1년 이내 가입자 1,000만명을 목표로 했지만, KT가 받은 성적표는 2017년까지 38만명에 불과했다.


비슷한 상황이 2,000년에도 한 번 있었다. IMT-2000 이다.

지금도 있다. 5G 세상.


이런 서비스는 수천명의 사람들과 최첨단 기술들이 들어가고 나서야 런칭된다.

그 난리를 생각했을 때 결과는 초라한 셈이다.

나는 여기서 사람들을 갈아넣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런 서비스에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처럼 큰 과업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큰 명예와 보람일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안다.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것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처음부터 삽질이었다.

전체사업을 총괄한 리더도 알았다. 처음부터 삽질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일했던 개발자들은 전부 알고 있다. 이 삽질이 정말 삽질이라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었다. 결국 삽질이라는 것을.


처음이니까 당연히 시행착오는 발생한다.

문제는 아무도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를 보고하고 토의하고 수정해서 올바른 길로 나가지 않았다.

위에서 큰 그림을 제시하고, 밑에서는 그 그림에 맞춰서 일을 했다.

전형적인 국책사업이었다.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월급 주는게 목적인 사업이었다.

전형적인 낙수물 효과의 정책사업.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쳐졌다.


왜냐하면 책임지는 사람, 답답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건 오직 SW 소스코드들 뿐이었다.

그나마 HW는 재사용이라도 하지만, 개발자들의 땀은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낙수효과가 목적이었다면 와이브로는 충분히 자기 소임을 다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트렌드는 종종 신기루를 만들어낸다.

그 신기루는 사업가들을 마치 불나방처럼 끌어들인다.

그리고 많은 개발자들이 바벨탑의 인부처럼 동원된다.


수많은 자금이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하고 버려지는 게 너무 아깝다.

내 존재가치가 버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을 했나?'

이 질문을 당연히 던질 수 밖에 없다.


와이브로는 정부주도 사업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정부는 지속가능한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형 구글맵, 한국형 유튜브, 한국형 빅데이터 모두 마찬가지다.


공유경제라는 키워드 위에 이루어지는 따릉이, 제로페이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반짝 효과는 있다. 세상에 무의미한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지속가능할 수 없다면 솔직히 삽질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잘 되기를 기대하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제2의 와이브로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기루를 던지고 그 아래 사업가들이 모이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결국 모래바람처럼 사라질 일에 개발자들을 동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그 에너지를 모아 더 창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와이브로 종료를 바라보며 머릿 속에 떠오르는 한가지 낱말이 있었다.

'빌어먹을 놈의 삽질'

삽질은 구덩이라도 만드는데, 와이브로는 뭘 남겼는지 모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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