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1일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인 OOO 씨가 석탄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이 기사를 읽고 참 슬프고 화가 났다.


"한국발전기술(주)" 은 "한국서부발전소(주)"의 설비운영을 맡고 있는 회사이다.

그런데 왜 발전소는 이 일을 직접 안하고 외주회사에게 맡겼을까?

자기 일이면서 1년 365일 해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혹시 출자구조에 문제가 있는걸까?

하지만 그 전에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를 정리하고 싶었다.

딱히 들어야 할 사람은 없지만 푸념이라도 하고 싶다.


위험의 외주화


자신들의 본업을 외주업체에 맡기면 진화발전은 불가능하다.

본질적인 개선의견은 회사가 달라서 전달되지 않는다.


배신을 막기 위해 거부할 수 없는 노예계약도 한다.

경쟁업체에 정보가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계약은 수익성의 본질인 대량수주를 불가능하게 한다.


수익성이 악화되면 기술투자를 할 수 없다.

주어진 일만 반복하는 단순 인력업체가 된다.

낮은 생산성의 업체가 사회적으로 늘어난다.


이익은 자산 소유주인 "발주업체"가 가져간다.

하지만 위험을 해소할 수는 없다. 기술력이 없으니까.


운영을 맡기면 사고위험은 외주업체에게 전가된다.

하지만 능동적인 해결은 할 수 없다. 

자기 자산이 아니니까.


이렇게 위험은 방치되고, 피해는 소비자가 받는다.

책임공방만 3-4년씩 이어지고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회사 내에 없는 기술은 아웃소싱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심기술이라면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기술유출도 조심해야 한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계속 투자를 해야 한다.

혁신을 하도록 조직을 자극하기도 해야 한다.


특정업체와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수익을 적절히 공유한다.

협업으로 인해 부가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그 업체가 커져야 나도 큰다.

그래서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한다.

최초의 핵심기술과 운영을 아웃소싱한다.

핵심기술이니까 협력업체를 계약으로 구속한다.

수익은 내 것이다. 협력업체는 일한 만큼만 돈을 준다.


업체가 어려워지면 다른 업체를 찾는다.

새로운 업체라 삐걱대겠지만, 어쨌든 굴러는 간다.

내부개발은 하지 않는다.

인건비와 고정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


왜 이런 비정상의 정상화가 진행되고 있을까?


효율과 효과 사이


효율은 같은 투입량에 최대의 효과을 끌어내는거다.

효과는 그냥 유효한 결과가 많은 것이다.


요즘 효율의 기준은 "돈"이다.

"최대 이윤 추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목표에 대해 돌을 던질 수 없다.


하지만, 두가지를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1) 자본을 통한 행복추구

(2) 효과를 상실하는 효율의 한계지점.


자본주의는 사회를 영속시키고 구성원을 행복하게 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게 대전제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

그런데 "최대이윤추구"는 어떤 지점에서 이 전제를 무너뜨린다.

이윤은 높아지는데, 행복한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거다.

이론은 안 그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다.


원인은 기업가 정신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률로 강요하기는 어렵다. 우회해버리기 때문이다.


아웃소싱은 부족한 역량을 채우는데 분명 효과적인 선택이다.

하청구조는 어느정도까진 효율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계점을 넘어서면 위험의 외주화가 일어나고 "효과의 상실"이 발생된다.

수익은 증가하는데, 성장은 정체된다.


누구의 책임도 아닌 일들이 만연하게 되면서 사회는 지속되기 어렵다.

큰 틀에서 접근하면 보이지 않는다. 현장으로 한두단계 내려가야 한다.


고도화 사회, 문제가 어려워진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는 기업이 풀 수 없다.

이윤추구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주업체가 풀 수도 없다. 자기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고 경험도 없다.

법으로 강제하면 문제를 우회한다.

어렵다.


문제를 풀려면 사회적 인식과 합의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동의하지 않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사회합의를 모으는 과정은 미디어의 역할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문제가 어렵다. 잘 풀릴 것 같지 않다.


작더라도 노력은 해 볼 수 있다.

당사자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느리더라도 현실적으로 그나마 유효한 방법이다.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해결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


사회가 고도화되니 복잡해진다. 풀이도 까다로워진다.

흑백논리나, 진영문제로 풀 수 없다.

디테일하게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IT산업은 달랐으면 좋겠다.


사실 이쪽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미 재하청, 재재하청이 일상화되어 있다.

위험의 외주화는 만연해있다.


그나마 좀 나은 건, 이쪽 사람들이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현업 베테랑들이 경영에 나서고 있고, 잘해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가 내포된 사업들은 점차 기피하고 있다.


그 정도가 조금 희망적이다.

앞으로도 주욱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바뀌어 나갈거라고 믿는다.


물론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어둡고 좋지 않은 모습들이 있다.

어두운 면이 제로가 될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좋은 것이 더욱 넓어지면 좋겠다.


IT는 달랐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주욱 달랐으면 좋겠다.

바꾸는 것은 역시 당사자들이어야 한다.

답답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거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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