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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준비

가족여행앱을 하나 만들어볼까?

by 회색연필 2018. 2. 23.

최근 내가 가지고 있던 도메인을 하나 포기했다. 

도메인 신청을 한지 딱 3년이 되었다. 

훌륭한 도메인은 아니었으니 남들이 탐낼만한 건 아니다.


다만, 앱이나 웹서비스를 만들어 볼까 싶었는데 이번에 포기한 것이다. 

조금 감상적인 느낌이 들어 기록 삼아 정리해 본다.


청계천(사진 @Pixabay)


초기 기획

요즘 엄마 아빠는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다닌다. 

그래서 역사여행 + 가족여행 + 주말여행 서비스를 계획했다.


아주 어린 아이라면 에버랜드, 과천과학관을 데리고 간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데리고 다닐만한 곳이 없다.

이미 대부분 가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도움이 될 것 같은 곳은 많지 않다.


주변에 물어 보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오케이 시장성이 있군.'

 

유아 컨텐츠는 많지만, 어린이 컨텐츠는 적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함께 할 놀이가 부족했다.

'오케이 경쟁률도 낮은 편이군.' 


사람들이 모이고 볼만한 후기가 쌓이면, 여행상품과 연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사 관련 굿즈를 팔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오케이 사업가능성이 있어.'


시스템 만들 능력은 나에게 있으니 시작해볼만 했다. 

적절한 시기에 투자를 받아오면, 시장성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첫번째 현실. 방향모색의 어려움.

관람시간, 이동시간으로 일정짜기를 제공하면 대박일 것 같았다. 

그런데 일정을 짜려면 먼저 '가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 DB가 필요했다.


'가고 싶은 곳'이라면 네이버블로그와 티스토리에 차고 넘쳤다.

'오케이, 네이버와 티스토리를 컨텐츠로 쓰면 되겠군.' 


그런데 글품질이 중구난방이었다.

양질의 후기가 흩어져 있고, 역사여행이라는 테마로 엮여 있지 않았다.

서비스에 쓸거라면 적절히 재편집해야 했다. 

시스템에 담으려니 어느 정도 데이터 정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제과정 중에 정보의 일관성과 정형화가 어려웠다. 

더구나 남의 컨텐츠를 정형화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구나, 역사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정형화로는 어렵다. 

열심히 했는데도 파일럿으로 만든 서비스가 구글지도와 똑같아져 버렸다. 

크롤링을 해보니, 네이버 지도만도 못했다. 

정확도와 매칭율이 떨어졌다. 

지적재산권 문제도 막막했다.


고민을 하다가 직접 포스팅을 만들어 DB를 쌓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여행을 시작했다.


두번째 현실. 컨텐츠 구현의 어려움

포스팅을 하려니 어떤 블로그에 할지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교육여행의 주요 결정권자는 주부들이다.

그리고 30,40대 주부들은 네이버와 카카오다.


하지만, 카카오채널은 컨텐츠 저장소로 이용하기에 기능이 너무 부족했다. 

더구나 검색유입이 쉽지 않아 초반에 시장반응을 보기도 어려웠다. 

네이버 블로그는 그런 관점에서는 100점짜리 실험 무대였다. 

개발자로서 갖는 불만이 있었지만, 컨텐츠로서의 시험환경은 적절했다.


하지만, 포스팅이 쉽지 않았다. 일단 글솜씨가 있어야 했다. 

상업화를 생각하면 남의 사진을 함부로 갖다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화질의 사진도 찍기 시작했다.


글을 써보니 생각보다 요령과 짜임새 있는 글배치도 중요했다. 

필요할 땐 국가기록원 홈페이지도 뒤져야했다. 

오래된 사진들과 기록들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갖추어야 할 역사지식의 깊이를 결정하기 힘들었다. 

깊어지면 포스팅이 길어져 지루해졌다. 

너무 얕으면 정보로서의 가치가 낮아졌다. 

재미있는 스토리로 써야 하는데 가진 재주도 부족했다.


정성글을 올리다 보니 3년에 450개 정도 밖에 못올라 갔다. 

매일 적당한 역사 거리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올리다가 글의 정체성도 갈팡질팡했다. 

생각보다 검색유입이나 피드백이 너무 안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소리의 톤이 정해지면서 자주찾는 이웃들이 생기고 소리 없이 찾는 이웃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교훈1 :: 기대와 달랐던 시장

3년간 거의 매일 통계와 유입되는 검색어를 보고 느낀 점이 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해서 그런줄 알았다. 

아니면, 네이버 검색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분들께 물어봐도 의견은 비슷했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다.


무시한다기 보다, 생활 속에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TV에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조회수가 뛰고 사흘을 넘기지 않았다. 

다른 분들의 블로그도 마찬가지였다.


2. 사람들은 "역사여행"에 대해 관심이 없다.


유흥준 교수 때문에 잠깐 바람이 불긴 했다. 

하지만, 그분 설명이니까 재미있는 것이었다. 

과거가 재미있으려면 입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데, 일반인이 그러기는 어렵다.


그게 블로그를 보는 걸로는 안된다. 

사람들은 지식보다 갈 곳을 정하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이 열풍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잘팔리는 정도가 한계였다.


3. 자극적인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았다.


이완용,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유관순 같은 널리 알려진 이슈에 대해선 관심이 높았다. 

특히 TV에 나오거나 라디오에 나오면 여지없이 높은 조회수가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안동의 독립운동가 같은 사람은 별로 조명 받지 못했다.


4. 정치상황이 엮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정사는 보통 정치사이다. 누군가를 숙청하는 이야기다. 

반면 야사는 문화사이다. 사치와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야사는 재미있는데, 정사는 재미가 없다. 

오늘날에 비추어 보면 부조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


톤을 낮추면 교훈의 강도가 낮아진다. 

톤을 높이면 현재와 너무 오버랩된다. 

쓰지 않으려니 너무 많은 내용들이 누락되어버렸다. 

특히 현대한국사는 그런 면이 더욱 많았다.


5. 역사탐방, 한국사 시험, 한국사 교재


인기 키워드는 이런 거였다. 실제로 히트수도 높았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학교 프로그램을 찾고 싶어 했다. 

그 편이 더 간단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시사점이 크다. 

서비스를 만든다면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전문가 고용을 해야 한다. 

아니면, 유흥준 교수 정도의 이름을 빌려야 한다. 

엄마들은 그런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반면 한국사 시험과 교재는 자격증 때문이었다. 

그래서 풀어서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요점들이 중요했다. 

하지만, 요점 정리 서비스는 "네이버 지식백과", "줌 인터넷백과"가 이미 잘 하고 있다.


교훈2 :: 처음에도 알았다.

지나고 나서 보면 잘못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블로그는 서비스 개발 전에 해 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실험이다. 

특히 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직접 지표가 된다. 

변수가 있긴 하지만, 통계적으로는 모집단을 대변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내가 생각하는 가설들을 검증해 보았다. 

1년 단위로 어떻게 반복되는지, 계절별로 어떻게 반복되는지 실험해 보았다. 

그러니 배우고 느낀 것은 많았다.


요약하자면, 처음에 예상했던 시장과 피부로 느껴본 시장은 완전히 달랐다. 

앱이나 웹개발부터 했다면 분명 사업 말아먹고 신용불량자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 컨텐츠 시장은 단언코 학습 시장이었다. 

어린이 컨텐츠,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아니다. 

백제문화단지는 에버랜드지, 역사공원이 아니었다. 

가이드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갔다.


없는 시장을 만들어낼 순 없다. 

단지 발견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는 있다. 

물론 잡스라면 시장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잡스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잡스가 아니다.


컨텐츠를 정형화하고, 여행일정 복잡한 추천 같은 걸 했으면 사람을 꽤 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글쎄, 물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용했을 것 같다.


하지만, 서비스가 성공했을 것 같진 않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한 절대 모수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절대 모수는 보통 처음부터 추정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여행을 준비하면서 일정을 짜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에 큰 점수를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되는 서비스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서비스는 시장을 알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새로운 여행 서비스로서의 기대는 접었다. 

아니 오래전부터 접었는데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그냥 아이들과 놀러 다닌 것을 정리하는 용도로는 살려 놓을 것 같다. 

그리고, 사업으로서의 기대는 접었지만 나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돈이 되진 않겠지만, 취미 삼아 꾸준히 포스팅 하지 싶다.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면, 큰 돈이 들어가기 전에 시장을 확인해 보는 게 좋다. 

20년 경력으로 겪어 보건대 성공확률이 높지 않다. 

사업은 모르고 시작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알고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앱서비스는 좋았다가 안좋았다가 한다. 

안 좋을 땐 서비스를 끌고갈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이 버티는 힘은 자신의 취향이나 신념 같은 거랑 맞아야 한다.


역사 블로그. 

얼마 되진 않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꽤 힘들었다. 

계속할 자신이 없다면 시작하지 않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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