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닷컴버블 때 회사를 만들었다.

코파운더로 초창기부터 일을 했다.

 

"반응형 VR 기술을 이용한 전세계 여행지 100선"

1년반을 투자해 인터넷서비스를 만들었다.

네트워크가 좋지 않을 때라 데모CD로도 만들었다.

"라이코스" 사장에게 시연을 했다.

놀라워했다.

 

그는 "글로벌 사장단 회의"에서 직접 이 CD를 시연했다.

32개국 중에서 5개국 사장이 동시오픈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돈을 벌진 못했다.

우리 사장이 어려서, 팅기다가 판이 다 깨져버렸다.

3년만에 회사를 접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나에게 "성공경험"으로 자리잡았다.

 

참고로, 뜨는 회사를 어떻게 돈으로 만드냐.

이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다양한 투자기법들이 들어간다.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거다.

논점이 아니므로 우선 넘어가자.

 

긍정에너지

치열했다.

막연했기 때문에 치열했다.

아이디어만 있었고,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몰랐다.

 

아이디어를 내면 "디자이너"가 스케치를 했다.

서서 이야기하고 해야할 일을 나누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고,

나는 서비스를 만들고,

여행전문가는 콘텐츠를 설계했다.

 

1차 개발이 끝나면 모여서 품평회를 했다.

서로의 느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항상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했다.

 

어떤 땐 사장도 참여했다.

예술이 목표가 아니니 투자가의 목소리도 중요했다.

사장은 투자가로서 조언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삽질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제 못다한 일을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하다보니 사명감이나 비전도 뚜렷해졌다.

아이디어가 샛길로 갈 때마다

선택을 해야 했는데,

선택을 하려면 비전정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갈림길에 부닥칠때마다,

계속 상위개념을 정리해 갔다.

 

시간이 흐르자 비전도 그럴듯해지고,

주변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직원뿐 아니라, 외부 투자가들도 호감을 보였다.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늘어갔다.

 

나는 이 때의 경험이 너무 좋았다.

긍정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이다.

술먹고 투덜댈 때도 있었지만,

긍정에너지에 묻혀 희석되어 버렸다.

 

나는 놀랐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우리를 인정했다는 것.

학연도 아니고, 지연도 아니고,

오직 "상품"으로만 인정 받았다는 것.

 

그것도 유명한 글로벌회사의

5개국의 "CEO"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는 것.

그건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다.

 

나는 긍정에너지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 친구들 만나면, 아직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그거 다시 해볼까?"

 

부정에너지

어쨌든 돈을 벌지는 못했다.

몇백배 가치평가를 팔고 폼나게 Exit 했어야했는데,

그렇게 하진 못했다.

 

그게 한이 되어서,

CEO가 폼나게 Exit 하는 과정을 지켜본적이 있는데,

왜 처음 회사가 Exit 하지 못했는지 아주 잘 이해하게 되었다.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과, IPO를 시킨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암튼 회사를 접고, SI 무대로 복귀를 했다.

 

SI 무대에선 부정에너지가 가득했다.

"안돼요."

대부분의 회의에서 이런 용어로 시작을 했다.

 

'이상하다. 내가 하면 금방할 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보니 왜 "안된다"고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개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적정위치에 꽃아넣거나,

교체하는 게 문제였다.

어마무시한 레거시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작동할거라는 "내 알고리즘"은,

Side Effect를 만들기 일쑤였다.

 

내 프로그램만 완벽하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모듈의 불완정성을 상쇄시켜면서 돌아야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듈을 모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안돼요."라는 말에 익숙해져갔다.

그런데 이 말은 나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뭘 하든 안되는 이유가 먼저 보였다.

점점 더 새로운 도전을 못하게 되었다.

자업자득이지만, 불행히도 그 땐 깨닫지 못했다.

 

분업과 기획팀

스타트업 다녀오는 사이에,

업계에 "기획팀"이라는 게 생겼다.

디자인팀, 개발팀은 분명 일이 뚜렷이 구분된다.

하지만, "기획"은 보통 CEO가 숙제를 내고,

팀원들이 머리를 모으는 방식으로 진행을 했었다.

그래서 기획팀이 뭘하는 팀인지 몰랐다.

 

"100장짜리 화면 시나리오"도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타트업에는 그런게 없었다.

화면 100장을 한꺼번에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반응을 봐가면서 10장씩 10번 만든다.

 

그리고, 화면과 기능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MVC 운운하지만, 솔직히 공학적 사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화면과 기능은 Loosely Coupled 되어 있지만,

Not Coupled 되어 있는게 아니다.

바꾸면 어차피 다 바꿔야 했다.

좀 더 빨리 편하게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예 쓰레기 같이 짜지 않는 이상

로직분리보다 Robustness 가 더 중요했다.

 

검토단계에서 큰 문제가 예측되는 경우도 있었다.

짬이 차니까 안보일 수가 없다.

옛날에 경험한 거고, 기술환경은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해결을 위해 Back 시킬 수가 없었다.

프로세스가 없단다.

 

이상하다.

프로세스가 없다면 만들면 되는거 아닌가?

그리고 당장 문제가 생기는 걸 막는것보다

프로세스를 유지시키는게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대형 SI업체가 견적을 뽑기 위해 탄생된 제도였다.

처음 시작한 분이 직접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당시의 사업내용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현장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안되는 현장도 있다.

아주 많다.

 

문제는 그런 현장에서도 무분별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는 산으로 간다.

산으로 안 가는 게 이상한 거다.

 

다시 서비스업계로

다시 서비스업계로 들어왔다.

이얏호, 다시 "긍정"의 세계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직은 옛날과 많이 달랐다.

"일을 나누어 주세요."

"저보고 그걸 하란 말인가요?"

"저는 그거 잘 모르는데요."

"아직, 요구사항이 정리되지 않았는데요."

 

너무 보수적이어서 간단한 스텝 하나 밟기 너무 힘들었다.

절차, 규칙을 극복해서 길을 먼저 뚫어야 사람들이 움직였다.

 

소스코드를 만들어서 돌아가는 걸 보여줘야,

누군가는 일을 가져갔다.

그렇게 모든 걸 처리하려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누가 이렇게 바꿔놓은거야. 버럭!!!"

라이코스가 왜 망했는지 알겠다.

야후가 왜 빌빌대는지 알겠다.

 

"태초에 일이 있었다."

그 일은 작았다.

나누어서 일할만큼 크지도 않았다.

계속 반복 개선되면서 성장을 했다.

일이 커지면서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분업화가 시작되었다.

 

즉, 일이 성공하고 커져야 분업화 대상이 된다.

작고 보잘것 없는 씨앗상태의 일은,

분업조직 내에서 쓸모없는 일이다.

아직 분업할 수 없는 어린이 상태의 일들도 쓸모없게 취급된다.

그래서 대기업이 스타트업하면 망한다.

 

그래서 TF (Task Force)가 생긴다.

조직과 프로세스보다, "임무"해결을 우선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조직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잘할리 없다.

벽에 부닥치면 해결하지 않고, 회피하거나 물러난다.

일은 안하고, 험담만 한다.

시끄럽다.

 

꽤 많은 인터넷서비스가 대기업에 M&A 를 당하고 난 후 이렇게 된다.

진화하지 못하고, 주인없이 방치되어 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누군가 잘못한게 아니다.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못하는거다.

토양이 다르면, 식물이 클 수가 없다.

 

요즘은

생산성, 효율화, 극대화를 위해

분업조직으로 만들놓다 보니,

누군가 일을 지시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

 

"을", "병", "정"만 그러는게 아니다.

"갑"도 그러고 있다.

심지어, "스타트업"도 그런다.

누가 일 시킬 사람도 없고,

잘했다고 칭찬해줄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 나서서 일 시켜주길 바란다.

도대체 이런 태도는 누가 가르친걸까?

 

능동에너지, 긍정에너지

이런 걸 전파할 친구들이 없다.

 

음. 그런데 진짜 없을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아니다, 있다.

잘하는 회사들이 있다.

적지 않더라.

 

"이런 문제 때문에 못해요"

안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래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거다.

 

"100점 짜리는 아니지만, 이렇게 풀어봅시다."

"그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가서 해결합니다."

그리곤, 자리로 돌아가서 뭔가 일을 한다.

도와달라고도 하고, 자기 일은 스스로 한다.

실패하기도 한다.

술한잔 하고 또 시작한다.

그걸 기반으로 한발짝 더 나아가더라.

 

현실세계에서 성공과 실패는 True, False 가 아니다.

벽돌로 발판을 쌓아서 담을 넘어가는 게임이다.

그렇게 실패를 쌓아서 벽을 넘어가는 거다.

있을까, 이런 회사가?

있다, 이런 회사가 !

 

희망

대학생 친구들은 재미있다.

아무것도 모르니 자연스레 긍정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안돼요. 그런건."

간혹 이런 친구들이 있다.

업체에서 인턴을 하더니,

부정에너지를 먼저 배워왔다.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못된 건 빨리 배워오는지.

 

그렇게 판을 다 깬다.

물론, 지적은 날카롭고 말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풀지는 못한다.

그럼 그 날카로운 지적과 합리적인 추론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통찰력 있는 눈은 유용하다.

하지만 입은 그렇지 않다.

말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해결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행동해야 하니 결정해야 한다.

결정하려고 하니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하니 공부하는거다.

 

단답식에 익숙한 세대는 대답하기 어려워한다.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반면 서술형 세대는 쉽게 답을 한다.

빵점은 없기 때문이다.

 

틀려도 되고, 좀 둘러가도 된다.

정답이 아니어도 문제를 풀릴 수 있다.

100점은 못되겠지만 0점 받을 일도 아니다.

 

프로젝트는 1,000 점을 채우기 위해 100 점을 10번 받는 게임이 아니다.

7점, 8점, 6점 등으로 1,000점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그 동력은 "긍정에너지"로부터 나온다.

그 에너지를 만들어내자.

 

어떻게 만들지?

실리콘밸리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검색하지 말고, 내 마음에 먼저 물어보자.

내가 느끼는 게 어떤지 동료들한테 물어보자.

논쟁하고 주장하자.

타협하고 절충하자.

그게 시작이다.

 

소프트웨어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단, 완벽해지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완성되려고 노력한다는

그 전제하에서 말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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