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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미국 MBA 못 간 이야기

by 회색연필 2023. 12. 28.

 

2,000년, 대학 동기들은 미국 MBA를 가는 게 유행이었다.
이거 다녀오면 연봉이 팍 뛰었으니까.
대학동기들 중 십여명 이상은 나가 있었던 것 같다.

나도 MBA 를 가야겠다 싶어 다니던 곳을 그만 두었다.
그런데 잠깐 벤처일을 돕는 사이 911 이 터져버렸다.
유학생이니 뭐니 다 입국금지할 때라 좋았던 시기를 다 놓쳐버리고 만다.

이후 인연이 닿지 않아서 그냥 SI 바닥을 굴렀는데,

40세 때 은퇴하고 싶어 의욕이 매우 넘쳤다.
기술 욕심은 있다보니 뜬다는 사업은 열심히 쫒아 다녔던 것 같다.
금융, 이동통신, 차세대, 웹2.0, 유비쿼터스, 인텔리전스 빌딩 등등

하지만, SI 는 돈이 안되었다.
"투입일수"로 돈 버는 방식이다 보니 잠깐 쉬면 돈이 안들어왔다.
회사 눈치를 보다보니 아예 내 사업을 해야겠다 싶었다.

 

사업을 할까?

그런데, 누가 사업하려면 명함은 2,000 장 정도는 있어야 된다 했다.
2,000명 정도는 되어야 100명 정도는 상시 연락이 되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 어려울 때 비빌 구석이라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프로젝트 현장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모두 다 소중하게 쌓았다.
다행히 API Hub, 서비스 인증 같이 사업 연동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맡게 되었다.

다양한 개발자, PM, 기획자, 대표들을 만났다.
여러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듣게 되었고, 그게 잘 되는지 안되는지도 지켜보았다.

 
그런데, 명함 2,000장.
모아놓고 보니 다 부질 없더라.
이걸 모으다 말고 통째로 갖다 버린게 몇번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정확히 얼마나 모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정체성

사업하려면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더 중요한 건 "내 콘텐츠"
 
내 콘텐츠가 없으니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았다.
나를 찾지 않으니 사업을 시작할 수조차 없더라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지식 몇 개 늘어놓는 게 끝이었다.

지속할 수 없으니 쌓이는 게 없었다.
쌓이는 게 없으니 높아지지 않았고, 높아지지 않으니 경쟁력이 없었다.

 

내 콘텐츠

블로그를 몇 개 열어 생각한 걸 콘텐츠로 쌓았다.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팔로워들을 모았다.

힘든 게 있었고 쉬운 것도 있었다.

잘 되는 게 있었고 안되는 게 있었다.

 

있어 보이는 건 지속하기 어려웠고,

좋아 하는 건 어떻게든 지속되었다.

 

누군가에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남들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했고,

그러려면 계속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했다.

시간은 한정 되어 있으니 있어보이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에 자연스레 더 손이 가게 되었다.


좋아하는 걸 하다보니 관심을 못받아도 지속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걸 하다보니 자연스레 좋은 에너지가 나왔다.


그게 사람들에게 전해지니 자연스레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사람들이 모두 나의 고객이 될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날거라는 건 확실했다.

 

중요한 것

중요한 건 "좋아하는 걸 하라"가 아니라, "오래 하는 거다."

 

나를 좋아해주고 내 고객이 될 사람들을 하루에 한명씩 붙여 365일을 쌓는거다.

그렇게 10년을 쌓으면 3,650명의 고객을 갖게 된다.

 

여기서 고객이란 술마셔서 사귄 친구가 아니라,

그들이 필요한 걸 내가 줄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는 뜻이다.

 

남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내 가치를 높여야 했다.

남들이 가지고 싶은 걸 내가 가지고 있어야 했다.

 

새로운 기회

이 교훈과 경험들을 개발자 후배들과도 공유했다.

"형, 우리 이거 같이 해요."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후배들이 생겼다.
너무 고맙다.
사실 혼자서 해도 되지만, 함께 하면 덜 지루하다.

 

일부러라도 남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잘 안될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또 하면 되지.
 
나이 드니까 인생이란 그렇게 사는 것 같다.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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