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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만드려면 내 목소리가 필요하다.

category 수다 2018. 12. 31. 11:47

크리에이터(창작자란 발명가와도 일맥상통한다. 사진 @Pixabay)



나이를 먹으면 세상으로부터 공격받기 싫어진다.

내가 옳다거나 결백을 증명하는 건,

힘은 무지하게 드는데 남는 건 거의 없는 일들이다.

방어기재 때문에 "증명하는 삶"을 산다는 건 솔직히 굉장히 피곤하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마다 제일 먼저 나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야 내 이야기가 먹히고 문제를 풀 수 있으니까.

아무리 훌륭한 분에게서 추천을 받았어도,

조직으로부터 인정 받는 건 오롯이 나만의 일이다.


그러려면 기술력 외에 공감능력, 이해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대신 내 색깔은 옅어진다. 이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조직에서 기술자는 이해당사자가 아니다. 

하지만, 개인 창작자 되면 그렇지 않다. 이해당사자가 된다.

직장에서 배웠던 생존스킬이 대부분 무의미해진다.


창작자는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때 방어기재는 방해가 된다.

공격받지 않기 위해 취하는 모호한 자세가 찾아와야 할 이유를 없앤다.

그 목소리가 옳은지 아닌지는 그 다음이다.


사실 사람들은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듣는 수많은 목소리들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들은 신문에 실려 있는 많은 기사 중 하나로 나를 듣는다.

그래서 내가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틀리더라도 내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SW 나 인터넷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비타민 같은 서비스라면 이런 색깔이 중요하다.

내 색깔이 끌리니까 관심을 가진다.

단 한가지 기능이라도 사람들은 필요하니까 쓴다.

인스타그램이 "공유"기능에만 집중했던 것처럼.


반면 진통제형 서비스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안 아프게 만들어줘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내 목소리보다는 경청과 이해가 중요하다.


직장이라는 시스템 속에서는 이런 색깔이 필요없다.

하지만, 창작자로서 살려면 자기 목소리가 중요하다.

해설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당사자로서의 감정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몰려든다.


사용자는 내가 설명하고 이해시켜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나를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주체다.

그들을 즐겁게 하려면 내가 먼저 즐거워져야 한다.

그러니, 길을 바꿨다면 제일 먼저 자기 목소리를 회복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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