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Pixabay


“우리, 생활자전거로 서비스를 한번 만들어 볼래?”

협회장 한 분을 소개 받았다. 

“네, 같이 한 번 해보시죠.”


막상 함께 일을 시작하니 말이 좀 이상하다.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되고.”

음, 나보고 어쩌라는거지?

좋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 정작 당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도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뭐지? 나보고 일을 하라는건가?’

아쉽게도 그렇게 삽질만 하다 몇 달을 허비했다.


“땡땡 반도체를 만들어서, 전세계 시장을 다 먹을거야.”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이제 곧 컴퓨터의 시대가 올거야. 

반도체 사업을 지금 시작해야 해. 

언젠가는 모든 전자제품이 우리 반도체를 쓰게 만들고 싶어.”

비전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두개의 차이점을 재빨리 알아차린다.

차이점이 뭘까, 어떻게 알까?

허무맹랑한 이야기엔 욕심만 있고 

누가 어떤 대가를 치를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가지고 싶은 건 있는데 줄 건 없다. 


하지만, 우주법칙은 Give&Take다.

얻는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주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그 대가를 대신 치러야 한다.


듣는 사람은 직감적으로 안다.

‘아 나보고 치르라는거구나. 

날 이용해먹다가 버리겠다는 생각이구나.’


그래서 도와주기 싫은거다.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 일이 될리 있을까?

제안에 갸우뚱한 생각이 들면 이미 그 이야기는 글러먹은 거다.


비전이라면 어떨까?

“나는 지금 이 길을 가고 있어.”

비전은 과정 중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완벽하게 정의되고 종결된 문장이 아니다. 

자기꿈이 실현중이라는 걸 보여준다. 바라는 것과 부족한 걸 드러낸다.

왠지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옆에 있고 싶어지는거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이거 대단하지 않니? 니가 한 번 해봐.”

“이거 대단하지 않니? 내가 하는데 너가 좀 도와줄래?”

이게 차이점이다.


욕심으론 사람을 모을 수 없다.

비전이 있어야 사람을 모을 수 있다.

그런데 비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고 몸으로 설명해야 한다.

솔선수범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잠깐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오래 속이지는 못한다.

그 누구도 영원히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제2의 페이스북을 만들겠다.’

‘제2의 구글을 만들겠다.’

둘 다 멋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솔선수범할 수 없는 일이라면 사람은 모이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잘하지 않아도 좋다. 

꿈을 꾸고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모인다.

현실화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게 사람을 모으는 방법이다.


“비전”은 내 꿈을 타인과 동화시키는 행위다.

그래서 구체적인 상황까지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페이스북은 이렇게 정의했다.

“페이스북은 친구와 가족들을 연결시켜줌으로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의미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어떤가?

“멋진데? 나도 저 일을 해보고 싶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반응할만한 내용이다.


“세상을 다 먹겠다.”

“돈을 대박 많이 벌겠다.”

이건 비전이 아니다.

결과로 얻을 내 모습을 묘사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되던지 관심이 없다.


비전은 이 비즈니스로 사용자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묘사해야 한다.

그들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바꿀거야. 그러니 네가 좀 도와줘.”

이게 비전이다.

그 과정에 자율권을 주고 성공을 함께 하겠다는 걸 자연스레 전달한다.

사람을 모아야 뭔가 해볼 수 있다.

허무맹랑하게 이야기하지 마라.

그렇게 얻은 사람은 오래가진 않는다.


끝.


+ 최신글

+ 많이 본 글